석종현 제21대 한국공법학회 회장 취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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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4   2016.03.1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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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시론 제17호 : 법치시론 제16호는 석종현교수의 한국공법학회 회장 취임사(6.29.)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 사단법인 한국공법학회 2001년 정기총회 및 학술대회

 

 

 

제21대 한국공법학회 회장 취임사

 

 

會長 石 琮 顯(단국대 교수)

 

 

▣ 일시 : 2001년 6월 29일(금요일) 17:00

▣ 장소 : 서울 교육문화회관 3층 거문고홀

 

 

 

제21대 한국공법학회 회장 취임사

 

石 琮 顯(단국대 교수)

 

 

존경하는 명예회장님, 고문님, 그리고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해 6월 30일 회원님들의 뜨거운 지지와 격려에 힘입어 차기회장으로 선출된 이래 벌써 일년이 지나 이제는 한국공법학회 제21대 회장의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회원님들께서 주지하다시피 우리 한국공법학회는 1956년 창립된 이래 올해로써 4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게 되었으며, 특히 학회의 구성원이나 역할에 비추어 우리나라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갖는 최정상의 학회입니다. 이러한 위상은 우리의 선배 회원님들이 쌓아온 자랑스러운 업적과 활동에 기인하며, 이러한 전통은 우리가 더욱 발전하고 계승시켜야 할 것이기 때문에 회장취임의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있습니다. 허지만 저는 회원님들의 공법학과 공법학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회원님들과 힘을 함께 모아 한국공법학회의 발전과 우리 공법학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공법학회는 격동의 시기였던 1956년 7월 憲法學者와 行政法學者들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玄民 兪鎭午 박사에 의해 창립되었습니다. 그 후 한때 활동이 부진하기도 하였으나, 1970년 海嚴 文鴻柱 박사에 의해 학회가 재건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956년 초대회장부터 제4대 회장의 임기기간은 1983년까지 였으며, 1년 임기의 회장제는 1983년 제5대 윤세창 회장 때부터 시작되었고, 현재는 문홍주, 김도창 명예회장님과 회장을 역임하시고 학회의 고문으로 추대되신 15명의 고문님(구병삭, 권영성, 권영설, 김남진, 김영훈, 김운용, 김원주, 김철수, 김철용, 서원우, 서주실, 이강혁, 한태연, 허영, 최송화, 권영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원중에는 장관, 총장, 학장 또는 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신 분도 많고, 국회의원, 판사, 검사 및 변호사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회원들이 행정기관의 각종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관학협동적 연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회원들의 활동에 힘입어 우리 공법학회는 최정상의 학회로서의 位相과 權威를 인정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한국공법학회 회장의 직을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들께서도 저와 마찬가지로 공법학도임에 대하여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계실 것 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여 보면 우리 한국공법학회가 그 위상과 권위에 걸맞는 공법학의 발전을 이루어낸 것인지에 대해서 저는 일단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公法現實과 公法學의 현실에 있어서는 우려할 정도의 괴리현상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법학도들이 강단에서 말하는 권력분립의 원리는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고,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원리는 官治經濟하에서 형해화된지 오래이며, 代議制의 원리는 정치권의 인위적 정계개편 등의 정치행태로 인해 형해화되었고, 국회입법의 원칙과 법치국가의 원리는 행정부 발의 입법의 양산과 행정입법의 양산으로 行治主義의 만능을 초래함으로써 형해화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괴리현상을 알면서도 우리 한국공법학회가 그 권위와 위상을 가진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며 自愧할 일이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한국공법학회 회원 여러분!

 

우리 공법학도(헌법학자․행정법학자)들은 누구나 공법학과 공법적 현실의 괴리를 인식하면서 자괴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자괴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괴리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며, 그와 같은 노력은 이 시대의 공법학도의 課題이자 使命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합헌적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이루어내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法治의 미명하에 수없이 자행되고 있는 恣意的 공권력행사에 대하여 우리는 合憲的 限界를 설정하여 국민의 기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정의로운 법치국가의 실현을 이루어내야 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들이 주지하다시피 오늘날의 정치현실과 행정현실은 바로 헌법의 문제이자 행정법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학회의 학술활동은 우리 헌법이념과 헌법의 기본원리의 실현과 관련된 공법제도에 관한 것으로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물론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헌법국가의 실천과 국민의 실질적 기본권보장은 결국 우리 공법학도들의 활동에 좌우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공법학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 중에 최근에 정치권이 문제삼은 신문고시제의 위헌성 문제 그리고 대통령중임제 개헌논의, 기초단체장의 임명제로의 전환문제 등에 있어 논의의 주도권을 상실함으로써 정치권과 언론이 정치논리 내지 언론논리로 주도하도록 방치한 바 있습니다. 심지어는 법치의 논리가 국민정서의 논리에 밀리고 있어도 우리 공법학도들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여 왔었습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현실과 학문과의 괴리현상을 만들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사회발전의 흐름에서 ‘公法學의 소외현상’을 초래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국민들은 이 나라에 공법학과 공법학도가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공법적 현실에 대하여 우리 공법학도들이 ‘법’을 말하고, 정치권과 언론은 그 법을 존중하여 말을 하여야 하는 것이 순리라 할 것입니다.

 

취임사에서 무거운 말씀을 드려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우리 학회와 공법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는 자기성찰의 계기를 가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공법학도들은 시사적 공법학적 현안문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공법적 이슈의 논의와 관련하여 정치권과 언론이 주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공법학의 방법론이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현실로부터 소외되지 아니하는 공법학의 방법론을 우리는 모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공법학의 연구에 있어 실무가들의 연구와 산학협동적 연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다른 영역의 경우 행정기관들은 한국행정연구원, 지방행정연구원, 의정연구원, 국토연구원, 토지연구원, 교통개발연구원, 서울시시정개발연구원 등 연구기관을 설치하여 수많은 실무전문가들을 양산하였으나, 우리 공법학 영역의 경우 헌법재판소나 한국법제연구원에 소수의 연구원들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법학도들이 중심이 된 연구기관이 전무한 실정입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이나 지방행정연구원의 경우 실상은 실정법제도나 지방자치법제의 범주내에서 이루어지는 행정연구이어야 하기 때문에 공법학적 연구가 제1차적 과제이어야 하는 것이나, 국가의 연구기관설립정책은 규범적 접근보다는 사실적 접근에 중점에 두어 왔었습니다. 이에 따라 합헌적 입법정책적 연구나 검토는 사실상 차단되고, 行治主義 萬能을 초래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우선적으로 산하 연구기관에 제도연구에 관한 모든 문제를 연구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公法學的 硏究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법학도들의 현실참여적 연구가 제도적으로 차단되고 있으나, 우리 공법학도들은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결과 특히 행정법학의 특별행정작용법 분야의 제도연구와 이론연구가 비공법학도들의 손에 좌우되는 현실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면 자치행정학회, 경찰행정학회, 세무학회, 교육학회 등은 활발한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公法學 분야의 전문학술단체의 설립이나 활동은 미흡한 수준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1979년에 창립된 한국환경법학회, 1994년에 창립된 한국토지공법학회, 2001년에 창립된 한국지방자치법학회 등 전문학술단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적 수요가 요청하는 공법학적 연구를 커버하기에는 미흡하다 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들이 주지하다 시피 우리 공법학의 연구대상은 공법현실을 규율하고 있는 다양한 실정법규와 공법제도인 것이며, 그 공법제도는 바로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를 규율하는 규범현실입니다. 따라서 우리 공법학도들은 법리적․법체계에 적합한 규범현실이 되도록 연구하고 이론과 법논리를 탐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헌법국가 그리고 법치국가에 있어 헌법이념과 헌법의 기본원리들이 합헌적으로 실현되는 규범현실이 되는 때에 우리 공법학도들은 正義를 말하고 法治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헌법상의 대통령제가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로 운영되고 있는 정치현실 내지 헌법현실과 관련해서 우리 공법학도들은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고,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에 따른 남측의 ‘연합제 안’에 따른 ‘남북연합’을 형성할 ‘민족공동체헌장’과 관련된 헌법문제, 남측의 ‘연합제 한’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의 채택이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관련하여 생기는 헌법문제 등에 대해서도 심층적 연구가 미진한 실정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컨대 헌법의 규범력을 사실상 무시하는 정치행태에 대하여 우리 공법학회 또는 우리 공법학도들은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침묵하는 공법학의 연구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현실정치나 공행정의 틀과 잣대가 될 수 있는 정치한 헌법이론과 행정법이론의 정립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법학도들은 헌법현실이나 공법제도의 운영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법논리를 세우고 法理를 통해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공법학도들이 말하고 싶은 경우를 충분히 카버할 수 있는 법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는 얼마전에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통합에 반대하는 논리개발을 시도하면서, 부당한 공법제도의 개선을 방지하기 위한 행정법이론을 탐구하였으나,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정부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실패를 예방하도록 구속하는 행정법이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이론개발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정의 재랑권통제법리나 행정쟁송법리는 모두 사후적인 수단이므로 정부의 실패나 행정의 실패를 예방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공기업의 통합과 같은 중요한 문제는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행하여 진다면 별 문제가 없으나, 정부가 주도적으로 통합을 결정하고, 그 내용을 법제화하는 단계에서 국회가 사후적으로 관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며, 더군다나 공기업통합법률안은 행정부가 발의하기 때문에 국회는 사후적으로 법률의 형식을 빌어 그 정당성만을 인정해 줄 뿐이기 때문에 주권자의 의사는 사실상 배제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앞에서 공법학의 위상과 권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자괴하는 입장에서 몇가지 예시하였지만, 조금 더 깊게 관찰하면 우리 공법학계의 전적인 책임이라기 보다는 국민과 위정자들의 法治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법치주의는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이해되고 운영되는 측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말씀드려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오늘날 행정국가시대에 있어 행정부의 優位와 행정입법의 양적 확대가 일반적인데, 그 행정입법은 非法學徒 출신인 행정공무원과 실무전문가들의 주도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행정공무원이 9급공채시험에 합격한 공무원인 경우라면, 그 시험과목에 법과목이 전혀 없기 때문에 헌법과 행정법 등 일상적인 업무처리와 관련하여 필요한 헌법과 행정법 등에 관한 기본적 소양이나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게 됩니다. 따라서 인․허가제의 개념이나 제도적 의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체 인․허가 등의 공권력행사를 일상의 행정업무로 해서 처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들은 合憲的 法에 의한 行政의 原理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우 법은 행정권행사의 정당성의 근거나 도구로 전락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며, 행정의 효율성이나 행정의 합목적성을 중시하는 실무관행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실무관행에서 合憲的 法의 支配와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우선시하는 공법학도들의 시각과 논리는 그들에게는 한낱 성가신 空論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각하에서는 공무원들은 헌법과 행정법이 행정권행사의 정당성의 근원이며 그 한계라는 점을 망각하게 되며, 법치보다는 행정편의주의를 신봉하게 되어 결국 법치주의를 형해화시키면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법학도들이 현실을 외면한체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강의실에서 헌법의 기본원리나 행정법의 원칙 등 공법이론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으니, 행정공무원이나 실무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실무를 전혀 모르는 공법학자’ 정도로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입니다.

법치주의를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는 공무원들이 공행정을 주도하는 오늘날의 행정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법학도들이 법치주의를 말하고, 法治文化의 정착을 외치는 것은 한마디로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라 할 것입니다.

 

법을 아는 사람, 법치를 아는 사람, 헌법이념과 헌법의 기본원리를 아는 사람들이 공행정을 주도적으로 담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나라에는 法治文化의 싹을 심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정부는 법치와 법을 조금이라는 아는 사람만이 공직에 진출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 나라에서는 ‘법률전문가’라고 하면 일단 변호사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이 매우 넓게 확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행정기관이든 기업이든 법률자문을 받아야 하는 경우 우선적으로 변호사를 선호하는 관행에 빠져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인식이며, 관행입니다.

 

왜냐하면 법률문제는 訟事의 문제가 아니라 법해석의 문제이거나 법제도 또는 법리나 법체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행정기관과 기업은 법률문제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공법학자들의 법률자문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법학자들은 헌법과 정의를 잣대로 하여 현행제도를 분석하고 평가하여 문제가 있는 경우 합헌적 제도가 되도록 개선안을 제시하거나 입법적 또는 입법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부 산하 수많은 연구기관들은 수많은 연구보고서를 만들어 내고 있으나, 법제도와 접목시킨 입법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제도개선안이 실정법제도에 부합되지 아니하는 경우, 그것은 法治에 반하기 때문에 허용되지 아니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도에 관한 법률자문은 어디까지나 법학교수, 특히 공법학자들의 역할과 기능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정자들과 기업인들은 종전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공법학자, 특히 행정법학자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제도적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공법학도 역시 인․허가제 등 공법적 규제제도가 지닐 수 있는 법리적․법체계적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여 그 입법적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등 입법정책적 연구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국세청의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합헌적․합법적인 것인지의 여부와 관련하여 현행 조세제도와 세무관청의 권한 등에 대하여 법리적 연구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고시제 부활 추진과 관련해서도 그와 같은 ‘告示制의 부활’의 허용성 여부 내지 합헌성 여부를 심층적으로 분석 연구하고, 무엇이 ‘法’인지를 분명하게 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 여러 사정들은 우리의 공법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들임을 재언을 요하지 않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법학도들의 실무현장 참여가 제도적으로 봉쇄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공법학도들의 참여 없이도 수많은 법률이 제정․시행되고 있고, 국가기관의 수많은 行政委員會의 운영과 관련해서도 우리 공법학도들의 참여는 거의 배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법치행정을 한다는 나라에서 그 법에 관한 법률전문가들인 우리 공법학도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니, 진정한 法治主義의 실현을 처음부터 기대할 수가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行治主義, 행정편의주의, 행정관료주의가 법치주의를 형해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국가권력의 남용, 국가권력의 傲慢과 獨善 나아가서는 제왕적 대통령의 군림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법치주의는 거의 실종될 위기에 직면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公法學徒들이 시대적 역할과 소명을 다하지 못할 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태가 생긴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와 같은 최악의 상태는 이제 막 생긴 것이 아니라 1948년 정부수립후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것이니 50여년의 전통을 유감스럽게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공법학도로서는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법학회와 공법학도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 힘을 모아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본인은 1년의 임기동안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자 합니다. 분명한 것은 통치권을 행사하는 국가에 관한 학문인 우리의 公法學 역시 힘있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公法學會와 公法學徒들은 거대한 코끼리와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잠자는 코끼리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은 물론 누구도 그 위용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법학회와 공법학도들은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나서 우리의 힘과 偉容을 발휘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憲法과 法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헌법국가에서 국가권력의 원천과 정당성은 모두 헌법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헌법에 반하는 국가권력행사에 대해서는 合憲性을 잣대로 해서 우리는 분명하게 公法的 論理를 세우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취임사의 말씀이 길어져 대단히 죄송하지만, 우리 공법학회의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우리 공법학을 잠자는 코끼리로 비유했지만, 사실은 잠을 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복리국가에 있어 공법학의 연구대상은 광범위하게 증대되었는데, 이를 연구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국회에서 어떤 법률안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의뢰한 경우에 우리 교수들은 강의․연구․학생지도․사회봉사활동 등에 쫒겨 사실상 法案硏究에 시간을 할애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법학도들은 실무적 현안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면서도 방관하거나 방치하여 왔습니다. 그 결과 생긴 공백영역에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공법제도와 관련된 문제나 제도개선이나 개혁문제에 대한 시민단체의 관여가 확대되면서 우리 공법학도들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공법제도 개선에 관하여 강하게 말하는 시민단체는 있으나, 말하는 공법학도를 찾아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국기기관 역시 자연스럽게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게 되고 시민단체의 제도적 참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에 공법학도들의 참여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우리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공법학회와 공법학도들이 깨어있고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학문과 연구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시사적이고 현안적인 공법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깊게 연구하여야 할 것이며, 적극적으로 문제있는 제도를 비판하고 그 代案을 제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말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우리는 理論과 實務를 겸비한 공법학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우리 공법학회와 공법학도들이 깨어 있고 살아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공법학만이 국가권력행사에 대한 견제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合憲的 法의 支配의 원리를 실현하여 국민의 실질적 기본권보장을 이루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보면 오늘날의 헌법국가에 있어 우리 공법학도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나 역할이 시대적 변화에 따라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며,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연구방법이나 현실인식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합헌적 법치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법학도들이 실무현장에서 나름데로 직접 법치를 실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비법학도 출신의 행정관료들이 法治行政를 주도하고 있어 문제가 있으며, 이는 公法學의 危機로 우리에게 닥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헌법이 그 기본원리의 하나로 법치국가의 원리를 천명하고 있는 나라에서 수많은 실정법규와 그 실정법규가 만들어 낸 公法制度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인력이나 연구기관이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또한 선거제도, 지방자치제도, 경찰제도, 교육제도, 경제규제제도, 토지규제제도, 조세제도, 언론 및 방송제도 등 공법적 연구를 필요로 하는 영역은 너무나 많지만, 우리 公法學界에는 이를 감당할 만한 전문인력이 태부족한 실정입니다.

 

따라서 우리 공법학회는 신진 공법학도들을 양산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법제처 산하의 한국법제연구원의 경우와 같은 法制硏究機關을 전문행정영역별로 정부가 설치하도록 건의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법제연구원에는 18명의 연구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나, 그 중 공법학도는 9명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그런데 국무총리 산하의 국토연구원의 경우 300명(계약직 140명포함) 이상의 연구원들이 건설교통부 소관업무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나, 그 중 법학도는 한두명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연구기관 운영방침은 한마디로 法制의 중요성이나 법학도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전형적인 事例라는 생각이 듭니다. 법제연구의 의의와 가치를 政府가 이렇게 홀대하는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법학도들이 법치주의의 실현을 우리의 역할과 사명으로 생각하여야 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라 할 것입니다.

 

정부의 法制硏究에 대한 무관심과 홀대는 곧 이 나라 법치주의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나타낸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 공법학회와 공법학도들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무총리 산하의 수많은 연구기관들을 法制硏究 중심으로 전폭적으로 개편하여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예시한 국토연구원의 연구는 실상은 국토법제에 관한 연구일 수 밖에 없는데, 그와 같은 법제연구가 비법학도의 손에 좌우되는 것은 사실상 법치주의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법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는 심각한 문제이므로 조속히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法治國家에 있어 모든 행정은 法에서 시작해서 法으로 끝나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實定法制의 문제인 것이며, 실정법제의 내용은 헌법을 구체화시키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법학도들이 실정법제연구에 참여하여야 하는 당위적 이유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헌법국가에 있어서는 정부라고 해서 초헌법적 법규범을 만들어내서는 아니되기 때문에 법제연구에 있어 헌법이념이나 헌법의 기본원리들을 합헌적으로 해석하는 연구방법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부가 법치주의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법제연구를 위한 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법제연구는 일단 리갈마인드를 가진 법학도가 주도적으로 담당하여야 하는 영역이므로, 비법학도 출신의 행정관료들이나 정부산하 연구기관들의 연구원들에게 맡겨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오늘날 정부는 專門化 時代임을 표방하면서 행정의 專門性을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전문영역인 ‘法制硏究’를 비전문가 집단에게 맡겨두고 있으니 이는 시대착오적이며 모순적 현상이라 할 것입니다. 이 점을 政府는 알아야 함은 물론 조속히 시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헌법상의 실질적 법치국가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合憲的 法制를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법률전문가들, 특히 공법학도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공법학도들의 전문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역대 정부는 우리 공법학도들의 현실참여적․실무적 연구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 장벽은 철벽과 같이 견고하게 우리 공법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 공법학과 공법학도들은 보이지 않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공법학의 위기 극복! 이는 우리 공법학회와 공법학도들이 해결해야 할 화급한 과제라 할 것이며, 저는 한국공법학회 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위정자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함은 물론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다음의 몇가지를 정부에 대하여 촉구하고자 합니다.

 

첫째, 정부는 9급공무원 공개채용시험의 과목에 헌법과 행정법을 추가하여야 하며, 또한 각종의 공무원시험에서 헌법이 필수적 수험과목으로 하는 제도개선을 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정부는 정부 산하의 각종의 연구기관에 공법학도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기관별로 그 연구직 정수의 30% 정도는 공법학도를 채용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정부는 산하의 수많은 行政委員會에 1명 내지 2명의 공법학자를 민간위원으로 위촉하여야 할 것이다. 위원회의 소관업무는 대부분 공법제도와 관련된 공법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넷째, 정부는 한국법제연구원과 같은 법제연구기관의 조직을 확대하여야 할 것이다. 국제경쟁시대에 있어 法制 역시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최소한 200명 이상의 박사급의 법제 전문인력을 채용하여야 할 것이다. 좋은 법률 또는 나쁜 법률이 국가경쟁력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효과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다면 그것은 수 兆원의 가치를 얻거나 잃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하나의 좋은 법률을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위정자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할 때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저의 긴 취임사를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우리 공법학회와 공법학도가 시사적․공법적 현안문제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실질적 법치국가의 원리’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법적 현안문제에 대하여 法理와 論理로써 할 말은 하여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1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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