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향기] 백 개의 방에서 맛보는 백 가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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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백 개의 방에서 맛보는 백 가지 맛
봄이 베어 먹은 살구는 그믐으로 익는데
저 달, 말끔한 사기砂器입니다

배는 곯지 말아야지
졸음 참는 달에 푸짐한 맛을 옮겨 심습니다
삼거리 원조 찐빵, 반으로 쪼갠 햇고구마에
백 개의 노란 보름이 들어 있습니다
솥뚜껑에 부쳐 내놓은 배추전에
배고픔이 납작합니다

후일담은 겨울 건넌 따스함 같아서
달빛보다 몰입이 더 밝아질 때쯤 주렁주렁 별들을 채우는 물병자리
빛들이 비워지면
아껴둔 샛별 하나 오래오래 녹여 먹어야겠습니다
백 명이 바라보면 백 개의 달이 되지
희고 둥근 백 개의 방에서 맛보는
백 가지 맛

후루룩,
손잡이가 없어 소리가 더욱 매끄러운
볼 깊은 달들을 꺼내
포옥 우려낸 멸칫국물에 국수 한 사리씩 말아내도 좋겠습니다

- 최연수, 시 '백 개의 방에서 맛보는 백 가지 맛'


벌써 2월, 남은 추위도 건너가면 봄이 온다는 소식이 들릴 겁니다
하나의 달을 각자 바라보며 백 가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2월도 힘차게 견뎌보세요.


<제4212호 향기메일 202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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